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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세충열문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006-12-31 (일) 15:07


병자호란 때 서울이 적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자 조정에서는 대가집 부인들을 강화도에 피난케 하고 이어 인조임금께서도 여러 신하들과 같이 강화도로 피난하려고 하였으나 강화도로 가는 길이 막혀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항전을 벌였는데 강화도가 적군에 함락되어 왕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적의 인질이 되었다는 비보를 들으시고 1637년 1월 30일 굴욕적인 항복을 하게 되었다. 오랑캐가 강화도에 상륙하자 많은 사대부(士大夫 : 문무(文武) 양반의 일반적인 총칭)집 부인들은 포로가 되어 오랑캐에게 갖은 만행을 당하였다. 이때 오랑캐에 욕을 당하느니 죽는편이 옳다하여 강화도 앞바다에 몸을 던져 순절(殉節 : 정절을 지키어 죽음) 함으로써 적군에게 욕을 면한 사세고부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바로 임진왜란 때 신립장군과 같이 최후까지 적을 무찌르다가 순직한 김여물의 후실인 평산신씨, 며느리 진주유씨, 손자 며느리 고령박씨, 증손자며느리 진주정씨이다. 사세 열녀의 이같은 정신은 바로 장의공 김여물(長毅公 金汝 )이 임진왜란 당시 애국 충정의 발로로 달천강(충주)물에 투신 자살한 정신을 이어받은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그 후 조정에서는 한 충신의 애국충성과 4대에 걸친 고부(姑婦)의 열녀정신을 죽음으로써 지킨 것을 길이 기리기 위해 조정에서 하사한 정문(旌門 : 충신,효자,열녀 등을 표창하기 위하여 그의 집 앞에 새운 붉은 문)이다. 
 
사세충열문(四世忠烈門)은 도리간(정면간)이 3칸, 양간(측면간)이 2칸인 목조건물로 4각 기둥의 주심포양식(柱心包양식 : 기둥머리 위에서 처마를 받치기 위하여 떠받친 양식) 팔작지붕(네 귀에 모두 추녀를 달아 지은 집모양) 이다. 건물 입구에는 사세충열문이라고 쓴 목판이 걸려있고 건물안은 2칸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우측방은 마루바닥으로 안쪽벽은 액자가 두개 걸려있고 좌측방은 맨바닥으로 벽의 중간지점에 안쪽부터 좌로 돌아가며 사세열녀 (四世烈女)들의 이름을 써 놓았다. 건물 주위로는 1.6m 높이의 담장이 둘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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