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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용]국기에 대한 경례 - 배경음악
글쓴이 : ansantour 날짜 : 2008-12-25 (목) 14:16
국기에대한경례 배경음악.mp3 (658.8K), Down : 17, 2008-12-25 14:16:40


국기에 대한 경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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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되지 않는 썩어 빠진 반민정신을 가진 대한민국의 정치인과 공무원을 위해서도 애도해 주시기 바람니다.

------------- 민족주체성 확립과 국토복원을 위한 애국가 가사바꾸기운동 안내 ---------------

강력한 민족주체성의 복원을 염원하는 안산투어는 청와대와 시청앞 광장에서
국토복원의 메시지를 위한 개사된 애국가부르기운동을 추진코자 합니다.
개사의 내응은 "무궁화 오천리 화려강산~"부분입니다.
이는 2천리 금수강산을 애국가에서 제외시킴으로서, 중국의 동북공정을
허용한 비극적 결과가 되었기에 고구려복원의 원대한 꿈을 후손들에게
새겨두기 위하여 지금부터 애국가 가사바꾸기운동 차원에서 개사 애국가
부르기 국민운동을 전개코자 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애국가 가사바꾸기국민운동본부 설립준비위원회 www.ansantou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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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정체성과 민족정치성 회복을 위한 한국령 국토개념 특별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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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삼천리’ 애국가 가사 바꿔야 한다
조선 영토는 ‘남북 사천리 동서 이천리’ 간도를 포기말라
 
성훈 칼럼리스트
우리가 공식행사 때면 꼭 부르는 애국가 가사 중에 이상한 문구가 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존하세

애국가 가사는 윤치호가 작사했다는 설과 안창호가 작사했다는 설이 있으나 공식적으로는 현재 작자 미상으로 되어 있다. 여하튼 문제가 되는 문구는 후렴구의 ‘무~궁화 삼~천리’라는 가사인데, 이 가사는 분명 누군가에 의해 최초 내용과는 다르게 개사(改詞) 되었거나, 아니면 1909년 일제와 청나라 간에 체결된 ‘간도협약’의 내용에 맞게 처음부터 작사된 것이 아닌가 한다.

또 이 애국가 가사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개작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일제가 조선인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조선사편수회’를 설립역사왜곡을 자행할 때 그 식민사관 이론인 반도사관에 맞게 개사했을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최초로 애국가 가사가 나왔을 때라고 하는 대한제국 때에는 조선의 영토 크기를 애국가 가사와 같이 삼천리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자는 무궁화가 국가를 상징하는 꽃(國花)으로 지정된 것도 잘 이해가 되지 않으며, 더욱이 나라의 영토를 역사적 사실(史實)인 사천리(四千里)와 다르게 삼천리(三千里)로 작사했다는 것은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는 분명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100%라고 할 수 있다. 

기록에 나와 있는 조선왕조의 영토는 분명 ‘남북 사천리 동서 이천리’였다. 이러한 기록은 중국의 여러 사서와 <조선왕조실록>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사천리라는 조선의 영토가 애국가 가사에 삼천리로 둔갑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는 분명 일제의 장난이 아니고서는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삼천리라 함은 약 1,200km로 南단으로는 땅끝마을 해남에서부터 北단으로는 함경도 온성까지를 말하는 것으로, 압록강과 두만강을 국경으로 하는 현재의 한반도를 말함이다. 즉 우리 영토에는 만주(간도)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말이다. 이는 일부러 간도를 포함시키지 않기 위해 삼천리라는 문구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사서의 기록대로 ‘남북 사천리’라 함은 남쪽 끝 해남에서부터 북으로는 흑룡강까지로 지금의 만주(간도) 지역이 거의 다 들어가게 된다. 그 만주지역에서 ‘동서 이천리’라 함은 동쪽 끝 연해주로부터 우리가 주장하는 서간도까지 모두 포함되게 된다. 그래서 필자는 애국가의 ‘삼천리’라는 가사는 ‘간도협약’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일제가 조작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과연 사서 기록은 ‘사천리’가 맞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먼저 중국의 사서 기록으로는, <도서편> <명사기사본말> <정계양잡저> <조선부> <흠정속문헌통고> <대청광여도> 등이 있다. 이들 내용에는 전부 조선의 영역을 “東西二千里 南北四千里 (동서이천리 남북사천리)”로 명기하고 있다.‘참고로 중국(명나라)의 1리는 560m이다. 

그러므로 동서로 1,100km, 남북으로 2,200km 좌우가 조선의 영토인 것이다.즉 ‘동서 이천리 남북 사천리’라 함은 만주(간도) 지역이 거의 다 들어가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도 ‘남북 사천리 동서 이천리’

1) 선조 26년(1593년) 6월 29일(임자) 9번째 기사
“경략 접반사 윤근수가 경략이 병부에 올린 게첩을 보고하다”

 
조선은 국토의 넓이가 동서로 2천리이고 남북으로 4천리입니다. 대체로 정북쪽의 장백산(長白山)에서 산맥이 일어나서 남쪽으로 전라도 경계에 이르러 서남쪽을 향하여 멈춰 있습니다. (朝鮮幅圓, 東西二千里, 南北四千里。 蓋從正北長白山發脈, 南至全羅道地界, 向西南而止)。

2) 고종 34年(1897년 / 대한제국 1年) 9月 29日(양) 2번째 기사
“김재현 등 716명이 황제로 칭할 것을 연명으로 상소문을 올리다”


또 논의하는 자들이 말하기를, ‘「왕」이나 「군(君)」이라고 하는 것은 한 나라 임금의 칭호이며 「황제」라는 것은 여러 나라를 통틀어 관할하는 임금의 칭호이므로 넓은 영토와 많은 백성들을 가지고 여러 나라를 통합하지 못하였다면 황제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삼한(三韓)의 땅을 통합하여 영토는 사천리를 뻗어있고 인구는 2천만을 밑돌지 않으니 폐하의 신민(臣民)된 사람치고 누군들 우리 폐하가 지존(至尊)의 자리에 있기를 바라지 않겠으며 지존의 칭호를 받기를 바라지 않겠습니까? 옛 것을 인용하여 오늘에 증명하고 여정(輿情)을 참작하고 형세를 헤아려 보아도 실로 시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且論者曰: ‘王者、君者, 有一國之稱, 而皇帝者, 統轄衆邦之稱。 不有拓土廣民統合各邦, 則不當稱之’云。 然我邦統合三韓, 陸地疆土, 延互四千里, 人口不下二千萬, 在今日爲陛下臣民者, 孰不望我陛下處至尊之位而膺至尊之號哉?)

3) 고종 34년(1897 / 대한제국 1년) 9월 30일(양) 1번째 기사
“시임 의정과 원임 의정 이하가 황제로 칭할 것을 주청하다”


심순택이 아뢰기를, “각 나라의 약장(約章)에는 각 나라 황제의 칭호를 인정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나라가 작고 군사가 약하여 나란히 나갈 수 없는 나라나 상스럽고 속되며 추하고 고루하여 개명(開明)한 세계로 진보(進步)할 수 없는 나라인 경우에도 각 나라가 반드시 인정하여 함께 교류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영토의 넓이가 사천리로서 당당하게 천자가 다스리는 나라이며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으며 예악과 문물이 세상에 표준이 됩니다. (澤曰: “各國約章, 有各國帝號認之之說。 此謂國小兵弱, 不足與方駕者及俚俗醜陋不能進步於開明者, 則各國未必認之而通行也。 惟我幅圓四千里, 堂堂萬乘之國, 可以養百萬之衆, 禮樂文物, 表準於天下)

4)고종 34년(1897 / 대한제국 1년) 10월 13일(양) 2번째 기사
“국호를 대한으로 하고 임금을 황제로 칭한다고 선포하다.”

우리 태조(太祖)가 왕위에 오른 초기에 국토 밖으로 영토를 더욱 넓혀 북쪽으로는 말갈(靺鞨)의 지경까지 이르러 상아, 가죽, 비단을 얻게 되었고, 남쪽으로는 탐라국(耽羅國)을 차지하여 귤, 유자, 해산물을 공납(貢納)으로 받게 되었다. 

사천 리 강토에 하나의 통일된 왕업(王業)을 세웠으니, 예악(禮樂)과 법도는 당요(唐堯)와 우순(虞舜)을 이어받았고 국토는 공고히 다져져 우리 자손들에게 만대토록 길이 전할 반석같은 터전을 남겨 주었다. (及我太祖龍興之初, 輿圖以外, 拓地益廣。 北盡靺鞨之界, 而齒革檿絲出焉, 南收耽羅之國, 而橘柚海錯貢焉。 幅員四千里, 建一統之業。)
 
위와 같이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서도 우리 영토는 분명 남북 사천리 동서 이천리였다. 특히 대한제국을 선포할 때인 1897년의 기록에서 여러 번 ‘사천리’란 기록이 나온다. 애국가 가사는 대한제국 때 지어져 전국에 보급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어떻게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란 가사가 애국가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사서 기록에는 ‘사천리’라고 해놓고 애국가 가사에는 ‘삼천리’라고 할 대한제국이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따라서 애국가의 ‘무궁화 삼천리’라는 가사는 일제가 ‘간도협약’과 ‘반도사관’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가사를 조작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우리의 영토를 스스로 축소하는 이러한 가사를 아무런 검증도 없이 무조건 채택한 이승만정부에 가장 큰 문제가 있고 그걸 그대로 답습한 현 정부까지 역사인식의 문제가 있다고 하겠다. 

실제로 조선왕조 이전의 우리 역사강역은 실로 엄청났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천하의 중심이었던 단군조선과 고구려는 중국대륙 동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서쪽으로는 최소한 감숙성 돈황 최대로는 터어키까지 연방 형태로 진출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애국가 가사는 쩨쩨하게 ‘삼천리’가 아니라 ‘일만리’ 내지 ‘이만리’가 되어야 마땅하다.

그렇게까지는 못하더라도 불과 백년 전인 대한제국 때까지만 해도 ‘사천리’였던 우리의 영토를 ‘삼천리’로 축소한 애국가 가사를 어떻게 채택할 수 있단 말인가!!! 애국가 가사의 변경은 반드시 검토되어져야 한다. 그래야 민족정기가 살아 미래의 희망찬 대한민국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주 즉 간도는 분명 우리 땅이었다. 만일 간도가 원래 청나라 땅이었다면 일제가 청나라와 ‘간도협약’을 맺을 이유가 없다. 청나라 입장에서는 자기네 땅을 가져오는데 반대급부로 철도부설권이나 광산채굴권을 일본에 줄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만 봐도 간도는 분명 조선의 영토였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아! 간도는 언젠가는 되찾아야할 우리의 영토인 것이다. 
 

(부록)
조선의 영토는 남북 사천리 동서 이천리로 기록되어 있는 명.청 시대 중국의 사서들. 이 기록은 중국의 기록이므로 이걸 근거로 간도는 우리 땅이라고 주장해도 된다. 사료의 기록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사용하지를 않는 것이다.

원본기사 보기:hinews.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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