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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문화인물] 상록수의 주인공 최용신을 찾아서..
글쓴이 : ansantour 날짜 : 2011-02-20 (일) 13:35



상록수의 주인공 최용신기념관에 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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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세상/놀러가기 딱좋아 2011/01/30 08:30


상록수역에는 상록수의 지명 유래에 대해 설명글이 있습니다. 몇 번을 들락이면서도 무심하게 눈에 띄지 않더니 이번에야 보이네요. 심훈의 상록수의 주인공...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 들러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납니다. 역에서 약 600여m 밖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가깝네? 가 볼까? 그럴까? 그러지 뭐... 걸어서 슬슬 가보기로 합니다.



최용신 (崔容信, 1909-1935)
26세의 짧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지만 국권상실기인 일본제국 통치의 암울한 시대에 식민지 수탈에 의해 피폐된 농촌사회의 부흥을 위해 농촌계몽운동으로 일생을 바친 농촌계몽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이다. 함남 덕원에서 태어나서 함남 원산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협성여자신학교(지금으로 말하면 신학대학쯤)에 재학하기 위해 가족과 떨어져 홀홀단신으로 내려왔다. 그가 농촌사업에 몸을 바치기로 결심한 것은 1928년 함남 원산의 루씨여고보(樓氏女高普)를 졸업하고 협성여자신학교(協成女子神學校)에 재학하면서부터였다. 1931년 안산 샘골 운영을 맡던 분이 사정이 생겨 더 이상 맡을 수가 없게 되자 YWCA에 운영을 요청하였고 이에 최용신이 교사로 샘골(천곡)에 파견되었다. 처음엔 '젊은 여자가~'라는 이유로 주민들로부터 호응을 얻지 못했고 일본제국주의의 간섭과 통제로 운영이 어려워졌으나 어렵사리 샘골강습소를 신축하고 문맹퇴치와 민족혼을 심는 교육 활동, 농업기술 전수 등으로 주민들의 지지를 얻게 된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에 수업 중 밖을 살피시며 불안해하면서도 칠판에 태극기를 희미하게 그려놓고 조선어(우리말)를 가르치시다가 일본 순사가 감시하러 올라오면 재빨리 칠판을 지우시면서 까지 그렇게 우리말을 가르치셨다고 한다. 22세에 안산(샘골)로 파견되어 도중에 일본 유학도 다녀오고 과로와 병으로 26세에 생을 마칠 때까지 실제 재임기간은 2년 8개월 정도 이지만 일제하의 그의 활동과 업적은 젊은 여성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났다는 이야기. 천곡학교가 잘 보이는 곳에 묻어달라는 유언에 따라 가까운 일리 공동묘지(일동 일원)에 묻혔다가 지금의 상록수공원, 기념관 옆으로 이장되었다.
선생의 농촌계몽운동과 독립운동 업적은 심훈의 소설 "상록수"의 실제 모델로 농촌운동의 귀감이 되고 있으며 1995년(김영삼정부) 건국훈장을 추서 받았으며 고향이 이북이거니와 애석하게도 가족이 없는 홀홀단신의 미혼으로 생을 마감하기도 하였기에 훈장은 이 곳 기념관에 보관중이라고 한다. 또한 선생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여 널리 알리지 못함이 안타깝다는 관계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 이상, 그 날 관계자 분께서 친절하게 전해주신 말씀이었습니다.



만남.

이끎.


최용신기념관으로 가는 길에 첫 만남이 이루어진 곳. 상록수역에서 최용신기념관까지 가는 중간 중간 안내판처럼 만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도식에 익숙치않은 길치인 탓에 방향성을 잃고 좌측 행단보도를 건너야 하는데 직진하고 맙니다. 지나가는 학생이 있어 물어보았더니 머쓱한 표정으로 절레절레... 고개를 흔듭니다. 한 블럭을 더 지나서 빙 돌아 최용신기념관이 있는 상록수공원에 이릅니다.



제대로 길을 건넜다면 아래처럼 만남 - 이끎 - 향함 - 안김의 순서대로 최용신 기념관에 다다랐을 텐데 말입니다. 돌아오는 길은 제대로 왔지요.



2층으로 보이더니 계단을 따라 올라오니 이곳에서는 단층으로 보입니다.



그 당시 농촌계몽운동에 앞장섰던 샘골교회와 나란히 놓여있습니다. 마당을 한바퀴 돌러보기로 합니다.


심훈의 문학기념비.


... 아침저녁 저의 손으로 치는 그 종소리는 저의 가슴뿐 아니라 이곳 주민들의 어두운 귀와 혼몽이 든 잠을 깨워 주고 이 청석골의 산천초목까지 울리겠지요... - 심훈의 소설 <상록수> 중에서 -


샘골강습소 당시 주춧돌과 향나무.


1932년 샘골강습소를 세울 때에 사용하였던 주춧돌로 20개가 사용되었으나 지금 남아있는 것은 15개이다. 그리고 그 당시(2년 뒤, 1934년)에 심은 향나무. 주춧돌은 향나무 주변으로 네모지게 놓여있는데 눈을 이곳으로 치워놓았군요.



먼저, 지층의 전시관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최용신소전과 판본들.


최용신소전은 농촌계몽운동가인 최용신의 생애를 정리한 전기문으로 저자는 유달영, 발행처는 『성서조선(聖書朝鮮)』이다. 발행인인 김교신이 서문을 썼고 저자가 최용신을 처음 만났을 때의 회상에서 시작하여 그의 생애를 기독교 신앙인의 관점에서 정리하고, 최용신 사후 선생이 가르쳤던 학생과 주민들의 증언을 기록하였다. 「여록에서, 심훈의 <상록수>가 최용신을 모델로 한 소설이기는 하지만 일부 독자들이 마치 <상록수>를 최용신의 전기로 잘못 알고 있어 본 자료를 집필했다고 밝히고 있다고 한다.



최용신선생이 학창시절 놓았던 무궁화자수가 벽에 걸려있는데 샘골 아이들은 무궁화로 만든 배지를 모자에 달고 다녔다고 합니다.



선생은 샘골 아이들을 조선의 빛이요 조선의 싹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계단 위로 오르면 마당과 샘골교회와 샘골강습소가 있습니다. 



지층은 전시관이고 지상층의 샘골강습소는 아이들의 체험학습장이라고 합니다. 선생님도 한 분 계시네요.


마지막으로 한 켠에 자리 잡은 묘소에 이릅니다.


묘소를 둘러보는 것으로 상록수공원의 최용신기념관을 떠납니다.

그 당시 감히(?) 젊은 여성이 농촌계몽이 무엇이고 독립운동이 어디 쉬운 일이었겠습니까?
일본제국 식민지 통치하에 일본인들이 그리 쉽게 호락호락 그렇게 하라 내버려뒀겠습니까? 우리 시선으로도 젊은 여자가... 소리부터 먼저 나올 시대가 아닌지요. 새삼 존경스럽습니다. 존경합니다. 또 존경합니다. 숙연하게 입 안으로만 뱅뱅 맴도는 말... '존경합니다.' 그 말 뿐.

 

최용신기념관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위치 :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해빛나길 56번지.(본오3동 879-4)
         - 상록수역에서 걸어서 5분거리. 주차시설 있음 (무료).
문의 :
031) 481 -3040
관람료 : 무료. 매 월요일 휴관



글·사진 이은주 (경기도 블로그 기자단_esilv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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