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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골강습소준공기념] 최용신선생과 상록수정신문화
글쓴이 : ansantour 날짜 : 2007-04-15 (일) 18:41
신상옥 감독 납북과 탈출-k091806fe-sk.mp3 (618.7K), Down : 62, 2007-07-19 12:58:28
양희은-상록수.mp3 (4.8M), Down : 42, 2008-08-18 18:12:09










































상 : 영화감독 신상옥씨, 영화배우 최은희씨 납치관련 라디오 방송보도
하 : [김민기님의 곡, 양희은님의 노래 - "상록수"


최용신선생 추모영상 및 관련자료 보기 -
http://www.ansantour.co.kr/ansantour/bbs/board.php?bo_table=news&wr_id=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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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대통령에 의한, 한국 새마을운동의 진원지로서의 상록수 [최용신기념관]

우리는 한국근대사의 근간을 바꾼, "한국 새마을운동"이 안산이 무대인 최용신의 영화 "상록수"를 통해 박정희대통령이 시사회장에서의 직접지시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매우 중요한 증언을, 20004년, 안산을 방문한 생전의 신상옥감독님과 그의 부인인 최은희씨로부터 확인한 점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본문참고)

[상록수 최용신선생 문화콘텐츠 연구자료]
http://www.ansantour.co.kr/ansantour/bbs/board.php?bo_table=news&wr_id=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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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맑고 푸르다. 4월은 잔인한 달이다. 탄생과 죽음을 재촉하는 달. 덧없는 생명이 세월뒤로 숨고, 새 날을 위한 싹들이 파릇하게 돋아나는 날, 뿌리의 용솟음으로 줄기에 싹이나고 가지 끝까지 올라간 물줄기가 마구 꽃으로 변하고 있다. 최용신기념관의 완공을 앞두고 상록수에 대한 여러 단상들을 짚어본다.

"안산투어"운영자 이광수 ansantour@ians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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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상록구 본오동의 최용신(채영신)선생 묘지, 그의 약혼자 김학준(동혁)과 함께 잠들어 있다,

[영원한 상록의 등불]
소설“상록수”의 주인공 최용신 선생의 샘골강습소를 찾아...

안산시 본오동의 한 고층아파트단지 뒤..상록수 전철역에서 불과 10여분 거리, 이곳 작은 동산위에는 근대 한국문학사를 영원히 빛내고 있는 주인공이 특별한 사연과 모습으로 묻혀있다. 25세의 젊은 나이에 민족의 무지와 독립을을 위해 혼불같이 세상을 살다간 신 여성, 김활란박사와 박에스더와 ywca와 교류하던 신여성, 일본으로의 단신유학과 전국의 자원봉사와 농촌계몽으로 나라를 위해 한 몸 기꺼이 바쳐, 아낌없이 자신을 불살라 버린 용감하고 당돌한 여자, 일본의 감시와 치욕적인 침략을 늘 원통해 하며, 민족지도자들의 친일매국 행위를 공공연하게 비판했던 살아있는 민족혼을 추종한 지식인, 3.1운동의 발원지인 화성과 샘골에 한줌의 흙이되어 근대 한국문학의 한페이지에 불멸의 큰 획을 긋게만든 소설속의 주인공, 천곡교회의 오야마가 가장 경계했던 민족 독립운동가, 일본 총독부로 하여금 고잔저수지(호수공원)를 만들어, 왜경의 간부들이 정보를 나누며 청석골을 드나들게 했던 1급 감시대상, 급기야 지역의 대 지주 염석주 선생으로 하여금 온 재산을 팔아, 만주로 독립운동을 떠나게 했던 맹렬 독립투사...그리고 감옥에 있는 애인을 찾아가 농촌계몽 활동으로 평생을 살자고 맹세했던 연약한 여자,


<그림2>
최용신 선생의 약혼자 김학준 장로(박동혁)의 묘

사랑하던 동혁(김학준 조선대 교수)을 보지 못한 채, 젊음을 민족앞에 바치고, 제자의 남편이 되었던 생전의 애인과 나란히 누워있는 특별한 사연을 간직한 곳. 놀랍고 엄숙하다, 책과 노래와 소설과 영화를 통해 군사독재와 민주화라는 격변의 역사속에서 근대 한국 젊은이들에게 삶의 이정표를 제공하게 만든 곳, 그녀가 학생들과 함께 심어놓은, 늙고 푸르른 상록수 향나무를 바라보면서, 수 없는 장면들이 필림처럼 지나간다. 아파트로 꽉 막힌 이 작은 도시의 공간속, 깍아버린 기슭위 덩그러니 누워 나라와 민족의 혼을 살려낸 위대한 인물이 이렇게도 쓸쓸히 누워있다니..


<그림3>
최용신선생의 묘
묘소에는 언제나 선생을 기억하는 전국의 문학도와 예술인들이 찾아오 헌화하고 간다.

[심훈과 상록수]
작가 심훈은 지금으로부터 71년전, 청석골이라 불리던 샘골을 방문했다. 동아일보를 통해 용신의 사망내용을 전해들은 심훈은 이곳 청석골을 돌아다니며, 마치 미친사람처럼 이 줄거리를 글로 써내려갔다. 단 3일만에 그는 상록수의 줄거리를 완성하고,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보내게 된다. 최용신은 “채영신”으로 김학준은 “박동혁”으로 소설명이 고쳐졌다.

대부분의 지명과 활동내용과 정황은 실지와 같다. 당시 “브나르도운동(민중속으로..)”에 심취한 심훈은 영화제작과 소설등의 문화적 방법으로 일제에 대항하는 문화적 독립운동을 추구해온 사람이다. 문화적 독립운동이 검열로 막혀있던 그에게 있어 최용신은 하나의 민족의 등불이었으며, 그가 갈망하고 찾았던 민족의 동질성이었으며, 자신 스스로가 나가야 할 인생의 방향이었다.

그는 동아일보의 기사를 보고, 무엇에 이끌리듯 마을로 무작정 내려와 사람들과 제자들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는 놀랄만한 충격이었으며, 자신이 추구하는 민중속의 개혁인 “브나르도(러시아어)”운동의 신화적 실천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동혁을 통해 연인관계와 생전에 언약한 연인이었다는 내용을 듣게 되었고, 그것들은 어두운 등잔불 아래서 고스란히 소설속으로 옮겨졌다.

특히 당시 지역의 대 지주인 염석주 선생의 최용신에 대한 지원과 그의 불타는 독립정신의 이야기를 전해듣고 깊은 감동과 불타는 독립투사의 정신을 가다듬는다. 소설 상록수는 이곳 청석골과 샘골의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그녀가 심어놓은 상록수를 바라보면서 신이 들린듯 이 소설을 써내려 갔으며, 신춘문예의 당선으로 동아일보에 연제되어, 최용신의 감동스런 민족사랑의 이야기가 세상에 전해지게 되었다.

2006년은 최용신선생 순교 70주년, 소설 70주년이 되는 아주 뜻 깊은 해였으나, 상록구청이 생겨난 안산에서, 최용신의 이름을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너도나도 사용하고 있는 안산지역에서는, 이 기념비적인 날에 아무런 기념식도 없었으며, 정부가 보훈처를 통해 진행한 기념식과 학술강연회의 통보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림4>
45년을 한결같이 최용신선생의 자료를 정리하고 생존제자들을 모시고 있는
안산시 고잔동에 거주하는 김우경장로

[샘골과 청석골]
샘골은 지금의 샘골교회 지역으로서, 큰 샘이 나는 마을이었다. 바로 앞이 바다였던 샘골과 청석골은 마을 사람들이 샘물을 길어 생활했으며, 최용신 선생은 샘골의 강습소 바로아래(지금의 소방서 건너편)에서 자취를 하면서, 강습소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부녀회를 조직해 계몽활동을 했었다.

청석골은 지금의 “뉴 라성호텔”이 있던 자리로서, 이곳은 이 지역의 "일리공동묘지"가 있던 푸른 돌산(청석)이 많이 나던 마을이었다. 이 청석은 매우 귀한 것이었으나, 개발당시 모두 매립용 석재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청석골이란 다시에는 반월면 천곡리, 이후에는 샘골로 불리워지고 있다.

<그림5>
최용신선생이 최초로 묻혔던 일리공동묘지, 원래 자리는 호텔내부라 어쩔수 없이 밖에다 표기함(2003년)

[“아는것이 힘, 배워야 산다!”]
선생의 어록비를 다가가니 숙연한 마음에 고개가 숙여진다. 동상이라도 있었으면.. "아는것이 힘, 배워야 산다”라는 글자가 영화 “상록수”에서의 최은희씨의 목소리로 낭낭하게 들려오는듯 하다. 교회는 헐리고, 강습소는 없어졌다. 개발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처한 샘골은 강습소가 있던 야산자리마저 불도저에 밀려날 상황이 되었다, 생존제자들과 루씨학교 동창들은 백방으로 뛰었다.

정부와 청와대에 탄원을 넣고 방문하기를 수차례, 드디어 공원보존을 지정받았으나, 공원으로서의 크기와 용도가 맞지 않았다. 안산시는 포크레인을 동원해 상록수 향나무를 뽑아내고 있었으며, 제자들과 후배들은 몸으로 막아야만 했다. 그들에게 상록수는 그들 자신이었으며, 목숨과도 같은 그들 인생과 샘골마을의 역사의 증인이었기 때문이다. 상록수를 쓰다듬어 본다.

거칠고 푸르른 나무 바래지 않는 상록, 최용신 선생이 마을의 계몽과 아이들의 배움과 독립을 염원하며 치던 그 종탑이 70년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 있다. 종은 없었다. 저 종소리를 들어 볼 수 없을까?.. 푸르름이 살아나는 소리, 상록수의 정신이 깨어나는 소리, 안산시민과 상록구민들의 정체성과 역사를 깨우는 종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 하다.


<그림6>
2004년, 안산시의회로 강습소 건립을 탄원하러 의회를 찾은, 홍석필(좌), 김우경장로(우)
홍석필 장로는 최용신선생기념관 건립을 위해 자신의 집을 팔아, 1억 5천만원을 안산시에 헌납했다.

[책을 보고 찾아온 사후의 제자들]
김우경 장로, 최용신 선생의 생존제자인 홍석필 장로의 메제, 홍 장로가 집을 팔아 1억 5천만원을 2005년 안산시에 강습소 건설비용으로 헌납하기까지, 노년이 깊어가며 평생의 빛인 최용신선생의 강습소복원이라는 오직 한가지 열망으로 살아온 사람,

그 자신이 시골을 돌아다니며, 석가래와 나무와 돌을 가져다 강습소를 지으려고 무던 애쓰던 김우경이라는 최용신의 후세이자 자료기록자, 언제나 안산시와 이 문제로 갈등을 빗어 아예 행정기관과 지역 사회가 미치광이로 취급하던 분, 그러나 외면만 보고 내명을 평가해 버리는 무관심과 무지가 부끄러운 안산시의 자화상인것을 우리가 모른다. 아니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모두가 진정한 봉사라기보다는 명분과 이익을 따지는 세상, 그는 45년전에 오직 한권의 소설 “상록수”를 보고 젊음을 최용신 선생을 위해 받치기로 하고, 샘골강습소의 야학에 뛰어든다.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던 그는 정부의 제도권학교로의 통합으로 야학을 불법으로 규정하자, 어려워지는 재정과 강습소의 정통성을 살리기 위한 학교인정의 요구를 끊임없이 제기한다.

결국 안산 신도시의 개발과 함께 강습소가 사라지고 아예 야산까지 밀어서 개발하려 하자, 국토개발연구원으로 청화대로 경기도로 온갖 노력을 다해 지금의 상록공원이 더 이상 깍여 나가지 않게 지켜냈다. 이 귀하고 소중한 민족 자산과 문화자산이 그리도 무관심의 대상이었을까?..

민족혼을 말하고, 젊음을 바쳐, 아이들과 부인들과 청년들에게 나라를 알게하고, 배움을 알게한 위대한 선각자를 우리는 왜 무시하고 무관심하려 하는가. 이어지지 않는 민족정신과 역사를 위해, 목숨까지 받친 의미가 과연 오늘닐 무슨의미를 부여해야 할까?.. 무거운 발걸음 뒤로하니 청아한 새소리와 아이들의 제잘거림이 여운처럼 들려온다.


<그림7>
[최용신선생 제자들의 모임]


나이 97세, 몸을 가누지 못하는 서울명문대 출신의 청년이 최용신 선생의 민족애에 감동하여 젊음을 받친 사연, 해방후 6.25를 거치면서 재건한 강습소가 점점 스러져가고 아이들이 정규학교로 입학, 편입하고 교사들이 떠나고 마을이 작아지고, 급기야 매립으로 앞바다와 샘골과 청석골이 사라져 갈 때 마지막 제자들의 손을 잡으며, 눈물흘렸던 시절을 생각하면서 노 선생은 눈시울을 적시운다.

한 몸 가눌길 없어, 충청북도의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세상과 이별한채, 남은 여생을 마무리하기전, 고통스런 몸을 이끌고 마지막 강습소의 간청을 위해 안산시청을 찾았다. 한결같은 대답, 편안하고 간단한 대화를 뒤로 남긴 채, 오늘 또 한 명의 제자가 숨을 거두었다. 이제 대 여섯분의 제자만이 남았다. 당시를 가장 확실하게 증언해 줄 홍석필 장로는 이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걸음이 부자연스러운 상태이다.

역사가 사라진다. 이이러니다 전 재산인 아파트를 팔아 강습소를 지어달라고 재산을 헌납하였지만, 기념관을 짓고 있는 상황, 건물은 완공을 몇 달 앞두고 있으나, 정신과 내용은 없이 서로가 명예를 빛내려고 어둠속에서 눈을 밝히고 탐내고 있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거기에서 과연 최용신 선생의 민족사랑과 나라사랑을 위해 몸을 던질만한 애국심을 가르치고 느낄 수 있을까.. 제자들을 한분한분 하늘로 보내면서 함께 해 온 지난 6년간의 기억이 아쉽게 흘러간다.

<그림8>
[상록공원내의 최용신선생 기념비에 새겨진 시]

[“종소리 나는 곳”이 있던 자리]
최용신선생이 묻혀있던 자리는 원래 뉴라성호텔 인근이다. 개발로 인하여 청석산인 일리공동묘지가 없어지고, 현재는 언덕의 모습만 조금 남아있다. 최용신선생은 이 청석골(샘골)의 “일리 공동묘지”의 꼭대기 조금 못 되는 지점에 혼자 묻혔었다. 그 뒤 최용신선생의 여 제자가 죽자 최용신선생의 무덤가에 묻혀있었으며, 이후 군사혁명 직후, 김우경 장로의 우마차로 농한기를 이용해 30여명의 마을사람들이 하루종일 이장을 하게된다.

이곳 샘골도 이름처럼 샘이 많이 나 까닭에(안산은 어디서나 물이 잘 나온다.)관를 개장하자, 물이고여 최용신 선생을 덮어주었던 김학준(동혁)의 오버코드는 어깨의 솜만 남은 채 검게썩어 있었으며, 마을 사람들은 비석을 마차에 싣고 힘들게 현재의 언덕까지 옮겼다. 최용신 선생은 사망당시 마을사람들에 의하여 사회장으로 하기로 만장일치로 합의하였으나, 함경남도 원산인근에서 비보를 듣고 달려온 부모는 시신을 가져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마을사람들이 매달려 간곡히 사정하였다. 선생의 묘를 여기에 있게 해 달라고.. 부부는 장례를 치른후 떨어지지 않는 걸음으로 울면서 샘골을 떠났다. 북한의 공업도시 원산과 남한의 공업도시 안산의 인연이 이렇게 이어져 통일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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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사람들의 유교문화를 극복한 가족들의 용기.
결혼한 애인, 동혁을 영신옆에 과연 받아야할 것인가?

동혁의 부인.길금복 여사..
김학준(박동혁)은 조선대학교 교수로 있다가 75년 3월 11일, 최용신의 죽은지 40여년이 지난 어느날 광주제일교회 장로이자, 교수였던 그는 생애 최후의 유언을 한다. “나를 용신의 곁에 묻어주오..” 한국의 유교사상이 지배적이던 당시 어떻게 이런 유언이 장례를 지를 가족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을까?.. 아버지와 남편을 생전의 약혼자의 곁에 묻어야 하는 유언.. 그러나 그것은 이미 예견되어온 평소의 소원이었다.

그의 부인은 다름아닌 최용신 선생의 뜻을 충실히 따르던 여제자 길금복이었으며 이후에서 성묘를 거르지 않던 또 다른 "상록수" 순애보의 주인공이다. 김학준, 아니 박동혁을 이미 그런 여자를 자신의 부인으로 맞이했던 것이다. 이를 테면 결혼의 전제 조건이었다. 이는 당시의 많은 제자들과 샘골 동리마을 사람들과 지역에서 이미 알고 있었던 그들의 깊은 사랑이었다.

그의 비석에는 “진리의 뜻을 같이한 동지로서 남달리 농촌계몽 운동에 뜻을 이루고자 수 많은 역경에서 서광을 비추다 고이 잠드신 상록수 주인공들이여”라고 되어 있으며, 1977년 9월 그의 미망인(길금복)과 2남3녀가 세웠다고 되어 있다. 누가 이들의 숭고한 마음과 행동에 존경심을 표시하지 않을수가 있을까? 무덤앞에 서면 김학준 사후의 제2의 “상록수”영화의 스토리보드가 마구 떠 오른다...

<그림10>
최용신선생의 강습소에서 치던 종탑과 상록수(향나무)

[국가유공자를 위해]
김우경 장로와 제자들은 최용신선생을 국가유공자로 지정받도록 10년이 넘게 노력중이다. 그러나 가족이 없고 그것을 독립운동으로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다. 농촌계몽이라는 모호한 과정은 일제의 무기를 들거나 만세를 불러 직접적으로 항거한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신을 통해 민족의 자주성을 일깨운것은 흔한 일이었다는 이유다,

그러나 그녀가 협성신학교 시절부터 일제의 강제적 일본어교육을 이유로 집단적으로 동맹휴학한 사건의 주인공이었음을 볼 때, 반항적 항일운동의 성향을 분명히 알수 있으며, 동혁 또한 우직하고 일본에 대한 저항심이 강한 성향의 소유자였다.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 농촌봉사 활동에 전념하게 된 것은, 사실상 여자의 몸으로 일제에 대항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일본총독부의 중요 위치에 있던 오야마가 강습소 감시를 위해서 특별히 파견되었을리도 없고, 심지어 그가 반일감정이 가장 높은 이 지역인 화성 반월지역의 감시를 위해 고잔저수지를 만들어 놓고 중앙청 총독부의 고위간부와 기마대간부들을 초청하여, 최초의 유료낚시터를 운영하며, 정보를 나누고 감시활동을 보고했을리가 없다.

김우경 장로는 최용신 선생의 강습소 건립을 지원한 염석주 선생과 최용신 선생의 독립운동가의 지정을 위해, 보이지않는 눈과 보행의 불편함으로 무릅쓰고 백방으로 다니며 노력했으나, 2005년 1월 국가보훈처에 의하여 공포패를 받는데 그쳐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 대한 인정을 받아들일수 없으며, 인정하지도 않고 있는 참 봉사자다.


<그림11>
샘골교회 전경(52년)

[무지와 공염불과 불문율]
우리 안산시가 21세기 첨단 문화도시를 지향하면서도 그 문화의 중심에 서 있는 중요한 사람인 최용신 선생에 대하여 유독 무관심 정책으로 일관해 왔던 것에 참으로 용기없다 생각하고 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막론하고 최용신 선생처럼 국내외에 이름을 널리 알린 인물이 안산에 또 있을까?

중국은 아예 라성호텔을 "상록수호텔"이라고 부른다고 할 정도인데,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소중한 문화적 자산을 평가절하려 한다. 이것을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표상이요, 민족의 자랑이자, 청년학생들에게는 배우고 따라야할 살아있는 상록수정신이며 표상이라고 생각해 본다.

또한 일부의 사람들에 의하여 그녀의 숭고한 정신과 노력이 왜곡되고 사실은폐가 되어서는 안되며, 나아가 기념관의 존재의 의미가 없으며, 이러한 시민의 자긍심과 민족얼을 지키고 가꾸어 나가는 일에 모두가 큰 관심을 가져야 할것으로 확신한다. 이는 교회의 문제도 아니며, 신도들의 문제도 아닌 안산시와 제암리로 이어지는 경기도의 문제이며, 항일농촌사이며, 민족독립운동사이다.

또한 소설을 평가절하 해서도 안된다. 소설을 통해 세계의 위인과 인물이 알려지는것이며, 그것을 통해 더욱 그 의미가 순수하게 파급되는 것이며, 많은 공감대를 가질수 있다고 생각한다. 잘려져 나간 동혁과 영신의 무덤가에 심겨져, 봄철 곱게 피어날 서양 수수꽃다리의 붉고 짙은 라일락의 향기를 생각하며, 애닳픈 그들의 민족사랑과 이승에서 꽃 피우지 못한 애정을 위로해 본다.

<그림12>
최용신선생의 추도예배에서 추모사를 읽고 있는 약혼자 김학준 장로(동혁/조선대 교수로 사망)

[최용신 선생의 민족정신을 지켜온 사람들]
샘골교회와 강습소... 버리지 못하는 욕심과 갈등들
샘골교회는 그 역사와 명성만큼이나 교회와 강습소와의 갈등이 깊어왔다. 물론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 모든 것을 포용하고 오늘의 자랑으로 삼아 그녀의 농촌봉사활동과 애국심을 받들어 나가기를 간절히 기원해 보지만, 정통성과 기득권, 신앙심과 정치적 영향력, 그리고 이유없는 인간의 불신들이 만들어 온, 최용신으로부터의 갈등들.. 그리고 그것을 방치해 온 사회와 행정기관, 이제 모두의 사랑이 모아져 선생의 기념관을 통해 시민들의 기원이 이루어지기를 빌어본다.

최용신 선생의 문제에는 생존해 있는 제자들이 우선적으로 인정되어야 정통성이 있으, 교회를 빌려 강습소를 열었던 이유만큼이나 교회는 강습소와 직접적인 관련을 지으면 문제가 풀리지 못한다. 제자들과 교회의 화합을 통해 지역과 나라를 위한 시민참여의 장을 만들어야 하며, 교계의 지도자들은 여기에 용감하게 자신의 양심을 신의 이름으로 말해야 한다.

신앙은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것이 아닐까? 성경속에서보다 인간의 자연적 본성속에도 상식과 양심과 진리는 있는 법이다. 단지 작은 기득권이나 명예라는 인간속의 욕심이 그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을뿐이다.

<그림13>
샘골교회 전경

[상록구민과 상록구청의 문화적 정체성]
이제 상록수는 “상록구청”이라는 행정기관 명칭이 되어 명실상부한 새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문화와 예술의 본거지인 상록구는 성호 이익선생, 단원 김홍도선생 이외에 수많은 선비와 사상가와 더불어, 이조 500년의 역사를 길이빛낼 우리나라 근대사의 정치, 사상, 문화, 예술을 총망라하는 인물이 집대성을 이루는 곳이며,

삼국시대와 조선으로부터 이어져 내려 온 한국정신, 한국문화의 영적뿌리이자 학문의 본거지다. 따라서 상록구는 유구한 정통성을 가진 한국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문화예술의 발원지로서, 미래 안산시의 정신문화적 성장동력을 만들어, 국제적인 도시국가를 지향하기 위한 원천이 되어야 한다. 이 상록수 향나무가 의미하는 문화적 정신적 뿌리는 안산시민의 진정한 정체성이며, 뿌리이자 고향이어야 한다.

노래와 영화, 책과 새마을과 기타 수많은 명칭으로 불리워지는 “상록수”는 문화예술제를 통한 시민과 구민들의 웅비의 구심점이 되어야만 한다. 국내 유일의 그린타운인 상록구는 그 푸르름이 상징하는것 만큼이나 과거와 현대, 미래가 문화적 가치로 융화되어 밝은 미래를 맞이할 것을 기원해 본다.

<그림14>
최용신선생이 사망할때까지 거주하던 집(본오소방소에서 건너편 약간 왼편아래 집터)

[간디와 테레사와 같은 세계적 인물이 묻힌 곳을 세계문학의 성지로 만들자..]
최용신기념관은 이제 한국문학사와 역사인물군에서 최용신 선생을 어떻게 평가하고 역사의 위치 어디쯤에 규정해 나갈 것인가? 상록의 정신을 정의하고, 항일정신과 민족지도자론을 개발하고, 청렴의 상징성을 만들어내며, 그린타운운동을 통한 청결, 청렴의 진정한 선진도시로도 만들어내야 한다.

인류를 위해 봉사를 실천한 위대한 수녀와 민족 지도자 간디와 같이, 자신을 돌보지 않고 민족을 위해 가장 값진 청춘을 받친 그 숭고한 정신은 결코 평가절하 되거나 비유되거나 축소되거나 왜곡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우리들 스스로의 위상과 역사를 평사절하 하는것이며, 안산지역의 모든 선각자들과 학자들의 공적과 충성심과 민족의 위대성이 함께 평가 절하되는 모순에 빠질것이기 때문이다.

상록공원은 “문학의 성지”로 “순교의 성지”로 승화되어 신앙인들과 교육자들과 민족의 아픔을 치유하는 화합의 장소로 만들어져야 하며, 한국인의 위대성을 높이는 상록의 촛불이자 민족정신을 밝혀나가는 등대가 되어야 한다. 더욱 현대적 관점에서 최용신 선생은 남한에 잠들어 있는 북한출신의 여성 독립운동가로서, 남북한이 다 함께 선호하는 항일민족지도자이자, 농촌계몽 운동가요 사상가요 헌신적 교육자이다.

이는 간디와 테레사와 같은 위대한 인물들처럼 사후에도 우리나라의 통일과 민족 화합을 위해 불타오르는 민족정신의 중심에 지금도 여전히 우뚝 서 있기 때문이다.


<그림15>
개발전의 청석골(샘골)

[최용신선생의 제자 홍석필 장로, 강습소 복원을 위해 재산을 헌납하다.]
샘골에서 태어나 평생을 샘골교회에 다니는 홍석필 장로는 지난 2005년 안산시에 기념관을 지어줄것을 탄원하며, 자신의 아파트를 팔아 1억 5천만원 전액을 기꺼이 헌납했다. 가족들조차 먼저 모르게 최용신 선생의 강습소 복원을 위해 자신앞으로 유일하게 남아있던 재산을 팔고 자녀들의 보호를 받으며 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지난 수십년간의 강습소 복원의 염원이 절절히 담겨있다. 안산시가 수십년간 최용신선생의 숭고한 민졳랑정신을 인정하지 않고 무대책으로 일관하자 개인적으로 강습소를 지으려고 여러차례 노력을 했었지만, 담당부서들과의 대립과 갈등만 남긴 채, 문화담당 실무자들이 가장 기피했던 존재가 되어, 제자들의 모임인 “최용신선샌 정신계승모임”을 이끌던 홍석필 장로와 김우경 장로는 안산시가 더 이상 강습소를 복원할 의사가 없다는것을 알고, 자신의 재산을 고스란히 헌납한 것이다.

그의 신앙심과 교육에 대한 열의는 남 다르다. 어릴때부터 지역의 일에 발 벗고 나서며 농촌학교의 교사를 평생 봉사해 온 홍석필 장로는 매제인 김우경 장로는 최용신선생의 정신계승자로 위임하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헌납한 것이다. 이들의 소박한 바람은 오직 최용신선생의 강습소에서 편히 쉬는것이며,

죽는 날까지 그 곳에 머물며 청소라도 해 보는 것이 소망의 전부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최용신 선생의 정신과 민족사랑이 올바르게 전달되고 교육되는것이며, 마지막으로 강습소를 떠난 후배들을 만나 매년 추모식을 갖는 것이다. 샘골은 오늘도 한국정신문화의 보전과 역사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역사 첫단계의 갈등을 극복해 나가려 애쓰고 있는것 같았다.

<그림16>
만주독립군의 군자금으로 모든 재산을 헌납한 샘골강습소 이사장 염석주선생, 당시 반월지역의 대 지주로서 일경과의 친분을 이용하여 최용신선생을 강승소건립과 재정을 일본경찰이 "오야마"가 모르게 여러차례 지원하였음.

[고잔저수지(호수공원)와 샘골강습소의 "오야마" 형사]
사라지는 참 역사들
샘골은 사실상 현대적 의미에서 안산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곡동은 군자면으로서, 시흥시에 속해 있었으나 반월면은 수원화성에서 이어져 나온, 사리(사동), 부곡(부곡동), 일리(일동)과 함께 안산지역의 3대 포구의 하나였다. 이곳은 소금과 수산물을 실어나르며 수원과 인천간의 매우 활성화된 어촌이었으며, 염전지대며, 사회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인식이 매우 개방적인 지역이었다.

농촌계몽 운동이 당시로서는 사실상 농촌을 대상으로 한, “항일독립운동”이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일리(일동, 본오동)지역의 항일저향정신과 역동성은 이들 신 세대 학생들이 항일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적 문화적 여건이 충족되어 있었다는 말이며, 염석주선생 같은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국내 거점들이 있었다는 것으로 봐서, 사리포구를 통한 거물급 독립운동가들이 출입이 자주 있었다고 추리할 수 있다,

사실상 지금의 갈대습지공원 일대에서는 유명한 독립운동가가 섬에서 군자금과 물자를 중국으로 실어나르기 위해 자주 접선했었다는 이야기가 원주민들로부터 전해오는것이 이를 반증한다. 따라서 최용신 선생의 농촌계몽운동이 단순히 “강습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동력과 사랑하다 죽었다”는 지극히 단편적인 역사 해석을 해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생각한다. 일제의 유능한 경찰간부가 이곳에 공연히 무리를 지어 내려오고 거점을 감시할리가 없다, 최용신 선생은 항일 독입운동가들과 염석주선생을 통해서 연결되어 있었다고 봐야할 것이다.

실지로 염석주 선생은 최용심양에게 민족의 억압이 일제의 침략에 의한것이라는 말을 공공연히 하면서 최용신의 강습소를 통해 민족항일 정신을 지역에 고취시켰다고 제자들은 증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암리 학살과 더불어 그 바로 직전에 일어났던 화성지역에서의 독리만세운동 차원에서 안산시의 최용신선생에 대한 연구는 더욱 새로운 각도로 재 조명되어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생존해 있는 제자들의 증언은 이러한 상황을 개별적, 사건별로 충분히 유추해 낼수 있는 매우 값진, 근대 지역향토역사 해석의 단초를 가지고 있다는 또 다른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

<그림17>
원산 루씨여학교 앨범의 최용신 선생

[노래, 영화, 책, 신앙, 교육.. 한국 문화컨텐츠의 중심]
한국 현대사에서 영화와 노래와 책으로 만들어진 “상록수”는 그 상징성 만큼이나 민족의 의식속에 문화적으로 정신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미쳐왔으며, 더 나아가 군사독재 타도와 민주화와 새마을운동을 통한 “잘 살기 운동”과 학생운동에 이르기까지 나라의 역사흐름의 변화속에 가장 깊은 질곡을 헤쳐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 영화와 노래와 책들속에는 우리나라 문화예술을 상징할만한 유명 인사들의 면면히 흐르고 있으며, 이는 안산시의 상록수가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는 문화예술적 자산으로 성장할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는것을 의미한다. 인류사를 볼 때, 희생과 전쟁과 나라와 국민이 관여된 축제가 가장 큰 영향력과 응집력과 파괴력을 갖는다,

더욱 안산시의 “상록수”는 이미 70여년의 세월을 통해 한국인들의 정서속에 반갑없이 스며들어 있다. 우리 안산시는 이것을 미래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적 한류자산으로 육성할 필요성이 다분이 내제되어 있는점을 [도시국가 전략의 문화육성]차원에서 매우 심도 있게 다루어나가야 한다. 이러한 “세계적 상록수”를 만들어 낼 만한 충분한 역사와 자원과 인프라가 있는 한, 상록타운(상록구청)의 문화경쟁력은 국내 그 어느 문화예술제보다 가히 브랜드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컨텐츠로 개발해 낼 수 있다.

이미 이 컨텐츠의 기본을 만들어낸 한국의 기라성 같은 문화예술인들이 한국의 문화예술계의 중심을 지키고 있는것을 주목할 필요성이 있다.

<그림18>
농촌봉사활동 당시의 사진, 최용신선생은 협성신학교에서 일본어 강요에 항거하여 집단등교거부 운동을 주동하여 퇴학당함.

[상록구민이여, 상록수를 심자, 에버그린시티의 중심 “상록타운”]
녹색 전원도시를 지향하는 안산시는 웰빙과 생태환경을 정책의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 이는 기존의 “상록”이라는 국내외적 브랜드를 더욱 활용하는 방향으로 추진되는것이 바람직하다고 할수 있다. 공교롭게도 최용신선생의 무덤가에는 오래전부터 라일락이 심여져 있다.

그들 동혁과 영신의 사랑을 염원하는 식목자의 사려깊은 판단이었는지 몰라도, 상록운동의 그린시티 운동이 이 상록수와 정책적 공통분모를 가지고 출발한다면, 그냥 “나무심기”가 아닌 “상록타운조성&(에버그린시티)”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성을 정책에 활용할 줄 아는 정치사회적 기술이야말로 당위성과 설득력과 더 나아가 시민과 구민들의 참여율을 극대화 시킬수 있으며, “내 나무심기”보다 “나의 상록수심기”라는 공동체 의식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효과도 있을것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정책과 예산을 사용하면서도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게, 단순한 “나(없어지는..)”보다는 “상록수(영원성)”라는 공동체의식을 시민화합 차원으로 융화해 낼 수 있는 조건까지 얻는것이 더 좋을것으로 본다.

<그림19>
2005년 1월 2일, 서대문 독립문 앞의 최용신선생 "이달의 독립운동가"기년강연회 현수막

[제자들의 눈물과 기도의 결실, 최용신기념관]
최용신기념관은 이제 70년전의 선생을 기념하는 숭고한 신앙의 성지로서, 안산시의 깊은 문화적 뿌리로서, “상록동산”이라는 문화의 성지로서, 최용신 선생이 가르쳤던 정신과 배움과 앎의 철학을 실천하는 “상록의 정신문학관"으로서, 청렴공직과 청년도시의 상징으로서,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 컨텐츠의 개발의 원천으로서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곳은 단순한 전시관이 아닌, 정신문화 컨텐츠의 생산공장이어야 하며, 도시역사의 유구성을 만들어내는 교육과 학술연구의 중심이어야 하며, 문화이론과 예술전략에서의 “해양한류국제화”라는 끊임없는 재 창조를 이룩해 내기위한 문화발전의 교두보가 되어야 한다.

이른이야기인지는 모르나 장기적인 문화육성 전략상(외국의 정통성을 가진 교회는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가능하면 샘골교회는 지하화되어 이러한 컨텐츠적 가치를 극대화 해야하며, 유신과 군사독재와 민주화를 청년기 상록문학의 이론을 개발하는 상록수문화 재 창조의 현장이어야 한다.

단원미술제가 한국의 문화행사로서 발전해 나가는것에 맞추어, “상록수문화예술제”는 이미 국내외에 깔려있는 인적 인프라와 문화적 자원과 항일운동 자원과 연계되어 수십년 동안 국제화될 수 있는 최적의 토양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 문단에서 “상록수”를 모르는 문단이 없고, 아시아 가요계에서 “상록수”를 모르는 가수가 없으며, 아시아와 세계영화계에서 “상록수”영화를 모르는 감독이 없을 것이다. 더욱이 현대사를 살아온 전 국민들이 이러한 “상록수+애국+충성심”이라는 등식에 동의하지 않는이가 없을테고,

민주화를 위해 젊음과 목숨을 받쳐 온 선구자들과 선열들이 이 “상록수”란 단어에 숭고함을 부여해 줄 것으로 보인다. 상록수의 간판을 내걸고 있는 전국의 수십만 업소와 국군부대와 사회단체와 문화단체와 모든 것이 연계될수 있는곳이 바로 “상록수 최용신기념관”이 내제하고 있었던 힘이다. 우리시는 미래의 정심문화적 자산을 거머쥘 매우 커다란 자원을 지금 만들고 있는것이다.


<그림20>
2005년 1월 2일 국가보훈처의 2005년 1월의 대한민국 독립운동가로 지정되어, 기념학술 강연회와 김우경 장로가 가족을 대신하여 감사패를 받음

[박정희 대통령, “상록수”영화 시사회에서 “농촌 새마을운동”을 지시하다.]
신상옥 감독의 영화 “상록수”는 우리나라 근대 농촌경제 역사를 통째로 바꿔 놓은 박정희대통령의 “새마을 운동”에 직접적인 동기를 부여한 영화이자 단어이다. 상록수 영화시사회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문화공보부 장관에게 “바로 이거다! 저 농촌계몽운동을 연구해서 영화를 보게하고 우리나라 농촌을 잘 살게 만드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즉석에서 지시했다고 신상옥 감독은 2004년 안산시 영화상영 방문시, 부인 최은희씨와 함께 시민들 앞에서 증언했다.

상록공원은 이로서 한국 새마을운동의 효시인 “농촌계몽운동”의 기본 개념이자 목적인 “잘 살기 운동”을 만들어 내, 우리나라 "농촌새마을 운동"의 진앙지인 셈이다. 이는 안산시가 만세운동뿐만 아니라, 전국 새마을 운동의 정신적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만들어 내어 다양한 정산문화적 자산과 컨텐츠를 양상해 낼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것을 의미한다.


<그림21>
2004년 최용신선생 정신게승모임 모습, 왼편 끝에 앉은이가 강습소의 마지막 교장선생

[오늘의 역사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현재 우리 안산시가 일반시민과 새마을운동협의회와 주민자치회와 안산지역 천주교 신자들과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는 협괘변철길 생태복원 사업이나, 해바라기심기 운동이 이러한 우리시의 정신적 뿌리와 전혀 관련없다고 하지 않을수 없으며,

안산시가 추진중인 [에버그린시티]의 기본개념 역시 사실상 “상록수운동”의 추구인 셈이다. 이것은 도시브랜드화나 도시발전, 지역경제활성화 역시 현대적 의미의 새마을운동이자 “잘 살기 운동”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매우 중요한 명분과 동기를 부여받게 하는 것이다.


<그림22>
최용신선생 생존당시(35년 1월 23일,이전)부터 강습소담당 김시원인 "오야먀"형사, 왼편 뒷즐 두번째 모자쓴 이.


[그녀를 기리며.. 상록수문학회]
안산에는 상록수 문학회가 있다. 이들은 최용신 선생을 기리며, 현대판 브나르도 운동을 실천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교회와 시민들과 사회와 함께 국내외의 문학인들이 모여 “상록수문학회”를 수년간 꾸려오고 있다. 글을 통해 최용신선생의 뜻을 알리고, 문학을 통해 국내외 문화인들과 만나고 있다. 어린이들로부터 노 작가에 이르기까지, 경기도와 충청도와 일본에 이르기까지 상록수의 인프라는 점점 그 소중한 싹을 움틔우고 있다.

이러한 의미로 안산문화원이 상록구에 위치하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며, 시대와 세계를 앞서 내다보면서 한국근대사를 빛내고 미래사를 밝혀주었던 위대한 선각자들이 많았던것도 안산시의 유구한 역사속에서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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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이것을 우연의 일치이든 고의적 의도이든 안산시의 모든 정책과 사업이 생태환경 복원과 녹색도시 만들기가 모두 “상록수”를 지향하고 있다는것에서 참으로 즐겁고 행복한 우연이라고 생각할수 있다. 단원 김홍도는 주로 황금색을 그의 그림속에 표현하고 있다. 황금색과 푸른색은 최고의 보석을 상징하는것이 아닐까?.. 최용신선생의 무덤가에 개나리와 벚꽃과 라일락이 서로 먼저 피고 지려고 흔들리고 있다.

동혁과 영신, 사랑하는 청춘남녀, 그리고 원산에서 달려왔던 부모들, 이웃사람들, 강습소의 까까머리 아이들과 단발머리의 여학생, 돼지를 선물로 받던 강습소경연대회와 영신이 기도하던 청석골의 천곡교회, 기념관의 망치소리가 겨울을 깨고들려온다. 종소리라도 들려오면 좋으련만... 종탑의 뼈대만이 앙상하다.

나는 오늘 협괘열차 철길과 최용신선생이 쳤을 종탑을 만져보았다. 아마도 그대로라면 모두가 일본사람들이 설치한 것이리라.. 역사란 돌고도는 수레바퀴라고 말했던가. 최용신 선생이 순국한지 71년, 책이 나온지 71년, 안산시가 탄생한지 21년, 상록구가 생긴지 3년, 이 3천평의 대지를 두고 일어난 3천만 민족, 3천리 방방곡곡의 항일과 새마을의 소리가 들리는듯 하다.

개발의 칼날속에서도 이 땅을 지켜온 상록이라는 이름의 모든이들과 원산루씨학교 동창들과 제자들에게 감사하고 싶다. 새봄이 어느새 산봉우리에 올라왔다. 새들이 지저귀며 상록수의 품속으로 날아든다. 날은 따스하고 상록수 동산의 하늘위에는 하얀 꽃잎이 눈처럼 피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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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의 복사나 인용시에는 출처(웹사이트)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관련자료 가기 - 최용신과 상록수문화컨텐츠 영상자료-03
http://www.ansantour.co.kr/ansantour/bbs/board.php?bo_table=news&wr_id=49&page=3

글/사진 : 이광수
gscit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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