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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신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006-12-31 (일) 18:09


최용신은 1909년 대한제국이 주권을 일본제국주의에 완전히 빼앗기기 1년 전 함경도 덕원군 현면 두남리에서 경주 최씨 창희(昌熙)공의 3녀2남 중 차녀로 태어났다. 원산에서 10여리 떨어진 두남리는 일찍부터 기독교가 전래되어 서양문화와 접촉, 개화된 마을이었다. 이러한 환경은 그녀로 하여금 기독교신앙을 갖게 하였으며, 봉사와 희생정신을 바탕한 농촌계몽운동에 뛰어들게 한 계기를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녀는 원산의 루씨보통학교, 루씨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협성여자신학교(현 감리교신학대학)를 중퇴하기까지 루씨여자고등보통학교의 교목 전희균 목사의 감화와 협성신학교의 황에스더(黃施德)교수의 지도와 영향을 받아 국가와 민족의 살 길은 쪼들고 가난하고 무지한 농촌을 부흥시켜야 한다는 굳은 신념을 갖게 되었다.
 
1930년대 동북아시아 정세는 일본제국주의가 대동아공영권을 부르짖으면서 대륙침략을 감행하던 시기였다. 그리하여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한반도를 병참기지로 만들고 인적 동원과 물적 수탈을 자행하면서 파쇼적 지배강화를 추진시켜 나갔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당시 민족운동가들은 3·1운동 후 실력양성운동을 전개시켰고, 1930년대에 들어오면서 절대빈곤에 허덕이는 농촌을 살리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의 운동으로 맞섰던 것이다.
 
이 시기 농촌계몽운동은 주로 언론사와 기독교단체가 중심이 되어 활발하게 추진되었다. 즉, 1929년 조선일보사의 문자보급운동, 1931년 동아일보사의 브·나로드운동이 전자에 속하고, YMCA·YWCA 등이 농촌지도부를 조직하고 농촌운동에 관여한 것이 후자의 그 좋은 예이다.
 
최용신의 농촌계몽운동은 기독교계통의 농촌운동의 일환으로 계획되고 추진된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YWCA의 농촌파견교사로 임명되어 1931년 10월 경기도 화성군 반월면 천곡리(샘골:현재 안산시 본오동)에 파견되면서 그녀는 농촌을 사랑하고 농민의 아픔을 함께 하면서 농촌 아동을 민족의 동량으로 키우는 구국교육운동에 발벗고 나섰던 것이다. 신여성으로서의 자긍심과 처녀로서의 수줍음과 부끄러움도 버린 채 직접 발을 벗고 논에 들어가 모를 심고 김을 매며 농촌부녀자들과 함께 밭을 매면서 구슬땀을 같이 흘리고, 밤에는 가갸거겨의 한글강습의 야학을 열고 아동들과 한글·산수·재봉·수예 등을 가르치는 강습소를 운영하는 등 1인 4역 또는 5역을 몸소 실천하였던 것이다. 그녀가 천곡(샘골)에서 우선 실행한 것은 가르치고 배우고자 하여도 마땅한 교육장이 없는 것을 절감하고 강습소 설립에 온 힘을 경주하였다.
 
천곡에 온지 8개월만에 강습소 인가를 받아 내고 1년 3개월만에 강습소를 신축하여 110명의 아동들을 교육시키는 학교로 발전시켰다. 이와 같이 최용신의 천곡에서의 활동은 천곡강습소의 교장 겸 교사로서, 마을 주부들의 주부회 지도자로서, 마을 청년회의 후원자로, 천곡교회의 종으로서 천곡의 온 마을에 그녀의 손길과 마음이 아니 거친 데가 없을 정도로 그녀는 천곡의 산 선지자였다.
 
1935년 장중첩증(腸重疊症)에 의하여 26세의 짧은 인생으로 최용신이 사망하자 천곡마을 사람들은 그를 사회장으로 1,000여명의 조문객의 애도 속에 강습소가 보이는 곳에 안장하였다. 이러한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자 이를 소재로 작가 심훈이 '상록수'라는 농촌소설을 집필하였으니 상록수의 여주인공(채영신)은 최용신을 모델로 한 작품이었다.
 
1932년 일본제국주의는 조선식민지정책으로 농업진흥정책과 자력갱생운동을 추진시키고 1934년부터는 농촌간이학교를 설립하여 농촌부흥운동을 일으켰으나 이는 한국 농촌과 농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침략전쟁을 보다 유리하게 전개하고자 한 방편에 불과하였다. 이와 같은 시대적 현실 속에서 가냘픈 여성으로 그것도 처녀의 몸으로 농촌에 뛰어들어 일제의 온갖 회유와 탄압에 맞서면서 농촌운동을 전개한 것은 그녀의 거룩한 희생정신과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심의 발로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정녕 그녀는 이 민족이 바라고 기대하고 존경하던 민족지도자의 표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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